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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 인천] 여성노동운동을 기억에서 역사로
지난 8월11일은 김경숙 열사 42주기 추모일이다. 김경숙 열사는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인 1979년 'YH 무역'의 부당한 회사 폐업 조치에 항의하다가 경찰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열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14년부터 올해의 여성노동 운동상 '김경숙상'을 제정했다. 상 제정이 가능했던 것은 역사 속 여성노동운동가들을 잊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은 노동운동의 중심지다. 1970년대 최초의 여성지부장이 탄생한 동일방직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지키는 과정에서 회사 측이 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뿌린 것에 대한 항의로 알몸시위를 벌인 사건은 여성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동일방직에 이어 여성노동자들은 반도상사에서 민주노조를 조직했다. 1980년대에도 마이크로전자, 태연물산, 코스모스전자, 세창물산, 진성전자 등 많은 사업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결성하고 위장폐업에 맞서 투쟁을 이어갔다. 2000년대 초 비정규직 노동자의 최저임금 문제를 처음 제기한 주역도 인천의 한 대학교에서 청소하는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운동은 제대로 기록되지 않고 있다. 인천 노동현장에서 일했던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어디에 있을까? 누가 그들을 기억할까? 다행히 작년에 열린 '어느 여성노동자의 길' 특별전에서 선배 여성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동일방직 선배들의 투쟁에서부터 자취생활과 맞선봤던 소소한 이야기까지.
이어진 토크 콘서트에서 70년대 활동했던 선배 노동자들과 현재 현장에 있는 후배 노동자들이 만났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을 뿐 여성노동자를 둘러싼 노동환경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혹한 노동을 견뎌야 했다. 노동권에 눈 뜨면서 민주노조를 만들고 정권과 사용자 측, 때론 남성들까지 가세한 탄압에 굴하지않고 굳건히 저항해야 했다.
아쉬운 것은 여성노동자의 삶과 투쟁이 당사자들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으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여성노동자 삶과 노동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현장도 마찬가지다.
70년대 한문을 배울 수 있다는 말에 이끌려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모임에 갔던 동일방직 여성노동자 석정남은 그곳에서 노동법을 처음 접했다. 노동법을 배운다는 말을 듣고 그는 “어쩐지 무서운 생각이 들어요. 이 법을 배운다고 우리같이 공장에나 다니는 약한 사람들이 법에 정해진 권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물론 그는 노동법과 노동삼권을 알게 된 후 삶이 달라졌다. 이렇게 도시산업선교회는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민주노조 활동을 지속해서 뒷받침해 주었다.
도시산업선교회에서 노동간사로 활동했던 김지선, 지역의료 활동을 했던 조옥화, 동일방직 해고자 안순애, 석정남 등은 1989년 인천여성노동자회 창립멤버로 회장 등 임원을 맡아 대중적 여성노동운동을 펼쳐나가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일꾼자료실에서 활동했던 나지현은 전국여성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권익활동에 20여년 몸담았다. 산업선교회에서 시작한 인천여성노동운동은 지금까지 연결되고 있다.
여성노동운동이 역사 속에서 제대로 자리매김하려면 여성노동운동을 기록하고, 투쟁 현장을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여성노동운동은 생존이었고 인권을 지켜온 현장이었으며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이러한 역사를 더 이상 기억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기록하고 현장을 보존하는 것이 역사를 이어가는 첫걸음이다. 그런데 그 현장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70년대 사업장이었던 삼원섬유가 있던 장소에 표지석만 외로이 서 있을 뿐이다. 여성노동운동의 상징적 공간인 동일방직과 인천산업선교회는 개발계획 앞에 위태롭기만 하다.
인천서흥초교 학생들이 '어느 여성노동자의 길'에 참여해 만든 영상 해설 중 “일하는 여성들이 있다. 그녀가 일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일하고 있고 노동을 통해 세상과 만나며 오랜 시간 동안 차별과 맞서고 있다. 그 길 위에는 수없이 많은 몸으로 쓰인 글이 있다”라는 대목은 왜 여성노동운동을 기록하고 공간을 남겨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박명숙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
출처 : 인천일보(http://www.incheonilbo.com)2021.09.0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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