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계여성의 날 94주기를 맞이하며
지금으로부터 94년전 1908년 3월 8일, 미국의
롯저스(Rutgese)광장에는 1만 5천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먼지 가득한 공기를 호흡하며 하루 12-14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섬유여성노동자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음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시위에 들어갔던 것이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는 10시간
노동제 쟁취!, 작업환경개선!, 성차별적 대우 개선!, 정치적
평등권 보장!이었다.
이에 미국의 자본가들은 군대까지 동원하여 저지하려 했으나
여성노동자들의 절망에서 오는 분노를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이날의 투쟁은 전 의류노동자의 총파업으로 번졌고 마침내 1910년
'의류노동자연합'이라는 조직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같은 해
세계노동자조직인 '제 2인터내셔널'은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3월
8일을 세계여성의 날로 정했다.
이후 전세계의 여성들은 3월 8일이 되면 기념식을 갖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거리를 행진하며 이 날을 여성들의 열망을 전달하고
요구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날로, 모든 여성들이 하나되는
연대의 날로, 그리고 남녀가 공존하는 사회를 희망하는 축제의
날로 기리고 있다. 5월 1일이 전체 노동자들의 요구와 결의를
모아내는 날이라면 3월 8일은 여성과제를 만들고 그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결의를 모으는 날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1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우리 한국의 여성들은
3.8세계여성의 날을 어떤 위치에서 맞이하고 있는가?
눈부신 기술발전과 경제성장을 축복으로 노래했던 20세기를
살아오면서 우리 여성들은 독재와 맞서 민주주의를, 분단에 맞서
평화와 화해를, 가부장제에 맞서 성평등을, 또 경제성장의
역군으로서 일하고 헌신해왔으며 이 결과 한국 사회는 많은 성장을
거듭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온존해있던 각종 성차별적 법과
제도는 많은 개선을 이루었다.
하지만 아직도 뿌리깊게 남아 있는 가부장적 편견과 관행은 우리
여성을 온전한 인격체가 아닌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성적대상으로
한정하여 보기를 강요하고 있으며, 난무하고 있는 성희롱,
성폭력과 가정폭력은 우리 여성들의 인권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성평등사회, 민주사회, 생태사회를 향한 여성들의 노력도 많은
위험에 봉착해 있다.
인간중심이 아닌 이윤 중심의 가치를 양산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성장중심의 한국사회를 더욱 왜곡시켜
사회적 약자와 여성의 희생을 전제로 한 생존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여성은 지난 40여년간의 경제성장에 대한 공로를
보상받기는커녕 IMF 이후 다시 일자리를 박탈당하거나,
비정규직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여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진출을 원활히 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보육의 공공성
확보, 모성보호, 가족 간호 및 노인부양의 사회화는 아직도
요원하다. 또한 경제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여성들은 향락산업으로
내몰려 딸들의 존엄성을 위협받고 있다. 매매춘 여성들에 대한
성적 착취와 인권 유린은 더 이상 사회의 치부로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또한 지난 9월 11일 이후 미국의 대 아프칸
보복전쟁과 부시 미대통령의 '악의 축'발언 이후 전쟁 확산에 대한
우려는 전 국민과 여성들을 더욱 불안과 긴장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의 여성들에게 3월 8일은 한 해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날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3월 8일은
여성들이 이제껏 참아왔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 날 여성들은 비로소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입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3월 8일은 사회적
약자로만 치부되던 여성이 '여성'임을 자각한 순간 운명처럼
여겨지는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쳐 주는 날이다.
따라서 3월 8일 하루만큼은 우리 여성들이 자신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딸들을 위해, 나아가 우리 사회의 성장을 위해 '하늘 아래
여자와 남자는 다를 수 없음'를 자각하고 성평등사회, 민주사회,
생태사회를 향해 노력하고 행동하는 날이었으면 한다. 만약 이
꿈이 아직 이르다고 한다면 3월 8일 하루만이라도 우리 여성들의
입가에 함박 웃음이 활짝 꽃피웠으면 한다.
